[지회장 인터뷰]강순복 지회장 “‘미(美)’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어요”
작가이자 피부미용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강순복 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 제주지회장.
진정으로 고객의 피부건강에 도움을 주는 피부관리로 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와 역사를 함께하며 지회를 위해 헌신해온 피부박사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홀로서는 꽃게"
예전 강순복 피부미용실 한켠에는 그녀가 쓴 책들을 비롯해 제주 문인협회의 당선작들이 비취돼 있었다. 피부미용사인줄로만 알았던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고객들 태도가 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질적이지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지회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피부미용사에 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국문학과 출신인 그녀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공개하기 부끄러웠던 탓에 노트에만 쓴 습작이 몇백편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시화
전에 출품해 인정을 받아 93년 등단하는 등 본격적인 문학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뇌성마비 장애아 봉사활동을 하던 중 다리가 불편한 소녀의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던 게 가슴 아파서 글로적었던 게 있어요. ‘홀로서는 꽃게’란 제목이었는데 첫 등단 작품이죠. 두 다리가 불편해서 손에 장갑을 끼고 기어다니던 아이, 다리가 불편해서 하루종일 앉아서 시계를 고치던 아이 등이 기억에 남는데 이를 토대로 쓴‘네 발로 걷는 아이’란
동화도 당선작 중 하나에요” ‘미(美)’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다“ 6.25의 전란시에도 동동구리모를 구하기 위해 여러 여인네들이 혈안이 됐던
것처럼 태초부터 미에 관한 관심은 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옷은 나이를 먹어도 돈만 있으면 사 입을 수 있지만 미는 오랜 내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미용을 배우게 된 거죠”
강순복 지회장은 본래 잘 나가는 어린이집 원장이었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 같이 20대 후반 돌연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히브리어, 헬라어 등의 어려운 성경 원어는 그녀의 목회일로를 어려움에 봉착시켰다. 이대로 제주에 복귀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뭐라도 배워서 돌아가자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바로 피부미용이다.
“85년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89년 제주도에 복귀해 보니 얼마 안있어 맛사지숍이 생기더라구요. 미용실도 하면서 피부미용을 겸업했는데 당시 20회에 5,000을 받았죠. 돈을 벌 목적보다는 피부미용 인구의 확장 및 저변확대를 위한 계산에서 였어요” 특히 미용은 누구나 하지만 피부미용은 자기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한다 는 것에 매력을 느낀 그녀는‘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늙어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에 한약재료를 활용한 민간요법으로 시작했는데 민간요법의 장점은 부작용이 없고 화장품에 길들여진 피부를 본연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효과가 더디게 나타납니다” 반면 화장품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만 모든 피부에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부 관리에는
취약하다는 생각을 하게됐고 모든 관리사들이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고객의 피부 건강에 도움을 주는 관리가 됐으면 하는 바램은
30년 피부미용 인생의 버팀목이다.
특히 강 지회장의 단골고객들은 교육을 많이받는다. 화장품이 모든 피부에 유용한 것이 아니듯 피부의 건성, 지성, 후(厚), 박(薄) 여부를 따지지 않고‘시원하게(?) 팍팍 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얇은 피부에 핸들링을 많이 하는 것은 피부에 더 안좋을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제품을 쓰지 않고 에멀전 스타일 제품과 가벼운 터칭이 필요해요. 환자나 어린아이들에게 죽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죠. 여드름이 있는 피부는
의학상식을 공부하면 도움이 되는데 경략 등 특화된 방법들이 많지만 여드름의 원인은 분노나 화를 표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객들은 계속 말을 시키면서 속안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기본이에요” 피부에 관한 한 누구보다 자신있다는 30년 경력 피부박사의 숍은 그래서 아는 사람들만 믿고찾는 숍이다.